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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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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항(金壽恒)ㆍ1629(인조7)~1689(숙종15)


 

  문곡(文谷) 선생은 안동인(安東人)으로 배청(排淸) 척화대신(斥和大臣)으로 절의(節義)가 있어 신망이 높은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선생의 손자요, 증 영의정 광찬(光燦)의 아들이요, 영의정 수흥(壽興)의 동생이다.

-옥병서원-

1646년(인조24) 18세 때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또한 진사시(進士試)에 장원급제하였다. 1651년(효종2)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급제하고 1656년(효종7)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또한 급제하였다.
우리나라 과거 역사상 율곡(栗谷) 선생이 아홉번 과거를 보아 아홉번 장원을 하여 최고 기록인 9과 장원급제자이고 조선조 500년동안 3과 장원급제한 사람이 모두 아홉사람이다. 과거를 보아 급제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한다. 장원급제란 천재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데 ‘3과 장원이니 9과 장원이니’하는 것은 천재중의 전채들이라 할 수 있다. 이 3과 장원급제자 중에 한 사람이 문곡 김수항 선생이다.
이 천재 문곡 선생은 3과 장원급제 후 정언(正言), 홍문관 교리(校理) 등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에 오르고 1660년(현종1) 승정원 승지가 되었다. 1662년(현종3)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大提學)에 특진되고 이어서 예조판서, 대사헌(大司憲), 이조판서를 거쳐 1672년(현종13)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이어서 좌의정(左議政)이 되고 이듬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어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0년(숙종6) 영의정(領議政)에 올라 현종실록(顯宗實錄) 편찬 총재가 되어 많은 업적을 남겼다.
문곡 선생이 고위 관직에 있을 때 ▲예송(禮訟-효종, 현종, 숙종대에 왕실의 복상기간(服喪期間)을 두고 서인(西人), 남인(南人)간 논쟁이 있었는데 일차예송을 기해예송(己亥禮訟), 이차예송을 갑인예송(甲寅禮訟)이라고 하는데 이는 퇴계학파인 영남학파와 율곡학파인 기호학파가 예치(禮治)가 행하여지는 이상사회(理想社會)를 건설하기 위하여 실천방법을 둘러싸고 전개한 성리학(性理學)적 이념논쟁이 있었다.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예송은 일단락 되었으나 2차 예송을 거치면서 대의확립(大義確立)이라는 본래의 명분에서 벗어나 붕당정치(朋黨政治)로 전개되었다.
▲경신출척(庚申黜陟-남인이 축출되고 서인이 집권) ▲기사환국(己巳換局-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집권) 등 당쟁과 정치혼란 중에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바른 정치를 실현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문곡 선생은 명문가(名門家) 출신으로 할아버지 청음 선생의 고결한 기개를 이어받고 타고난 천재적인 기능을 다하여 고고한 조선 선비 정신 발현에 노력을 다하였다.
문곡 선생은 자제교육도 잘 시켜 큰 아들 몽와 창집(夢窩 昌集)은 유명한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의 한 분이고 둘째는 농암 창협(農巖 昌協)인데 대학자로 대제학 판서, 판돈령부사를 역임했고, 셋째는 삼연 창흡(三淵 昌翕)인데 일체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에만 전념한 대학자이다. 농압과 삼연은 율곡이후 최고의 학자로 지칭되고 있다.
조선조 말기에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문곡의 후손이 주축을 이루었고 문곡 선생은 1673년(현종13) 이차예송 후 모든 벼슬을 버리고 포천군 이동면 매바위에서 그의 아들과 함께 백운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고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겠으니 여기 거주지를 마련하라’고 자제들에게 일렀다.
이 때 촌로 김성대(村老 金聲大)를 만났고 촌로가 거주지를 마련하는데 크게 도와주었다.
그러나 문곡 선생은 평생에 그리던 매바위에는 다시는 와보지도 못하고 귀양을 갔다가 간신들의 모함으로 사약을 받았다.
이 시기는 당쟁이 가장 심하고 간신들의 도량(跳粱)으로 강상(綱常)이 무너지고 정치는 혼미하여 인현왕후(仁顯王后-숙종왕비)가 폐서인이 되었다. 간교한 장희빈이 왕비가 되었고 우리나라 성리학의 대학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선생이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던 때이다.
이어서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 김창집(金昌集), 이이명, 조태채(趙泰采), 이건명(李健命) 등 명신들이 경종대왕을 시해(弑害)하고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고 남인파에 속하는 김일경(金一鏡), 목호룡(睦虎龍) 등이 고변하여 4대신이 처형되고 그 외 200여명이 화를 입은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났다. 참으로 참혹한 사화였다.
후에 무고임이 밝혀져 김일경, 목호룡 등은 참형을 당하였다. 문곡 선생도 그후 신원(伸寃)되어 현종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옥병서원 외 3곳 서원에 제향, 문충(文忠)의 시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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